"27살 대니얼"은 시간을 거슬러(go back in time) 상상속에서 만나는 27살, 파릇파릇한(!?)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본 포스트를 통해 여러분은 어학연수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될 것이며, 국내 연수(국내 영어학습)에서도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점수가 정한 대학 생활
고 3이 된 대니얼, 성적이 떨어집니다.
고 1 때 바라보던 Y 대가 멀어지고, 고 2때 바라보던 H 대가 멀어지고,
떨어진 성적에 담임 선생님은 서울에서도 꽤 떨어진 A 대, 산업공학과를 추천합니다.
"산업공학과가 뭐하는 학과인데요?"
"어, 그건 나도 몰라. 네 선배가 갔는데 좋데."
네 선배가 갔는데 좋데 . . . . !
이것이 20살 성인이 된 대니얼의 인생을 결정한 바로 그 한 마디였습니다.
대니얼에게 대학 생활은 한 마디로 "방황"이었습니다.
훗날 생각하죠.
'신나게 놀기라고 했으면, 아쉽지나 않지 . . '
방황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든 상패, "학사 경고"를 두 번 받습니다.
한 번 더 받으면 "명예 퇴직"이죠.
방황하는 대니얼을 국가도 이해를 했는지, 2대 독자라는 이유로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명예로운 군복무 권한을 줍니다. 기간도 줄여 주고요.
총알에도 뚫어지지 않을 강력한 도시락 가방으로 국가를 열심히 지키고 복학생이 되어 돌아옵니다.
'아, 이젠 정신 좀 차려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선배가 좋다던 그 학과 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번은 수학 관련 전공과목 시험을 망쳐 서울대 대학원생이었던 조교에게 찾아갔죠.
"이번 시험 D 나오면 전 학교 떠나야 해요. 꼭 좀 부탁드려요~"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너그러운 인상의 그 조교,
"어느 정도 학점이면 되요?"
"D만 아니면 되요~"
얼마 후, 'B+'를 받고 기뻐합니다.
"역시~ 삶은 구걸하는 자에게 뭐든지 더 준다니까~ ㅎ"
저 멀리 다가오는 먹구름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3학년이 거의 지나갑니다.
'4학년만 보내면 취업인데, 난 성적도 안 좋은 편이고 어떤 직장을 가야 하지?'
그런 와중, 과친구들이 하나, 둘 해외로 떠납니다.
캐나다 토론토, 몬트리올, 미국 보스톤, 뉴욕, , ,
'어 뭐야~ 다들 영어 공부한다고 외국 나가네? 나도 부모님께 말씀드려 봐야겠다'
. . .
"어머니, 아버지, 여기 견적서에요. 10개월에 1,850 만원"
"뭐가 그리 비싸냐? 꼭 가야 하는 거야?"
"네, 다녀와야 영어도 잘하게 되고 취업도 잘 된데요."
미국행 비행기
바리바리 짐을 싸서 눈물 글썽이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대니얼은 떠납니다.
미국으로!
어려서부터 그려왔던 미국, 정말 천국이었습니다.
잔소리하는 사람 없고, 매일 햄버거, 피자 먹고, 주말이면 한국인 친구들과 렌트해서 여행다니고.
나름 영어에 대한 욕심은 있었기에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수업도 거의 빠지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모르는 게 있을 때는 옆 자리의 금발 미녀에게 서툰 영어로 물어보기도 했었지요.
그러던 중, 그 넓디 넓은 미국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대략 10개월 정도 미국에 머물렀는데 한 달 후 귀국 예정이었죠.
그리고는 자신이 알게 된 현지 미국인 대학생들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대니얼의 영어 실력이 좋지 않다 보니, 생각만큼 미국인들을 만나는 것이 편하진 않았습니다. 함께 어울려 게임을 하고 놀 순 있었지만, 긴 대화를 하며 영어 실력을 늘리기에는 그들과의 언어 수준 차이가 너무 컸었죠.
어쨌든 다른 한국 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그 동창으로 인해 많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엠에프(IMF) (The Asian Financial Crisis, 1997)
3개월쯤 미국 생활에 젖어있을 즈음, 멀리 한국서 전해 온 뉴스에 많은 학생들이 뒤통수를 맞습니다.
소위 "IMF 위기" 가 터진 것이지요.
1달러, 원화로 1000원 정도에 마시던(사실 그것도 싼 것은 아니었지만) 물이 2,000 원이 됩니다.
주말마다 떠나던 근교 여행은 사라지고, 주변에 있던 친구들도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다며 예정보다 일찍 귀국합니다.
즐겁기만 하던 미국 생활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6개월이 되자 은행 잔고는 거의 바닥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 다시 불효 막심한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는 부모님께 전화하죠.
"어머니, 그 잘 사신다는 친구분께 달러($) 좀 꿔 주세요. 6개월 있었는데, 좀 더 있어야 영어가 많이 늘 것 같아요."
못 된 아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
얼마 후, 친구분께 달러를 꿔서 보내주셨습니다.
성취도 60%의 나머지 6개월
미국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도 떠나고, 대니얼도 나머지 6개월을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보내게 됩니다.
여전히 미국은 아름다웠고 마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영어 학습 관련해서는 여전히 최적의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조지아 대학 부설 어학원을 다니며 다른 학생들처럼 커리큘럼을 쫓아가긴 했지만 기대만큼 큰 발전을 보지는 못했죠.
그러면서 현지에서 만난 유학생들을 통해 그들이 겪는 언어 장벽에 대해서도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아, 생각했던 것 만큼 영어가 그리 쉽지는 않구나. 1년이면 영어를 마스터할 줄 알았는데 . . '
귀국행 비행기
꿈만 같던 미국에서의 1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것을 경험했고,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전보다 영어가 많이 늘었습니다.
한 가지, 미국행 비행기에서 가졌던 생각 '1년 후면 이 기내 방송이 모두 쏙쏙 들어오겠지?' 는 결국 실패로 판명되었습니다.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여전히 그 방송은 명확히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정산의 시간!!!
귀국 후 철없이 유학을 보내 달라고 했지만, 결국 못 가는 것으로 결정났습니다.
대신, 부모님께서는 그 동안 미국에서 쓴 비용 정산서를 보여 주셨죠.
"헉! 3천 400만원!"
1년 전 제시했던 견적에 거의 두 배를 쓴 것입니다.
"어머니,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모두 갚을게요~ 걱정 마세요~"
이 돈,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못 갚고 있습니다.
되돌아 간다면(If I could go back in time)
대니얼이 현재의 마인드로 그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1) 한국에서 처절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어학연수를 떠난다.
기회가 다시 주어 진다면 그래도 가긴 갑니다. 사전 준비는 그 때와 완전히 다르게 할 것입니다.
2) 어느 정도 수준까지 향상시킬지 목표를 잡고 간다.
목표를 잡기가 힘들다면 온라인이나 다른 친구들을 통해 어학연수 1년에 얻을 수 있는 성과를 알아 볼 것입니다.
3) 가능하다면 1년은 어학연수, 6개월은 혼자 여행을 한다. (총 18개월)
4) 현지에서 영어를 배울 때 궁금한 학습 방법은 꼭 알아보고 적용한다.
예) 영어 원서를 봐야 하는지, 문법 책은 원서를 봐야 하는지, 리스닝은 뉴스를 들어야 하는지, 드라마를 봐야 하는지, 봐야 한다면 얼마나 봐야 하는지, 하루 영어로 대화는 얼마나 해봐야 하는지 등.
1년이 긴 기간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역시 제한된 시간입니다.
이 제한된 시간에 가장 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올바른 학습 방법 역시 중요합니다.
대학 교재로 쓰이는 영문법 원서를 미국 대학교 도서관에서 모두 이해하는 척 보던 생각이 납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될 수 있는 영문법 원서지만, 당시 대니얼에게는 부담되는 어려운 교재였습니다.
좀 더 쉬운 교재를 선택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5) 미국인들을 보며 나 자신의 미래를 수시로 생각해 본다.
미국인의 삶은 한국인의 삶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기에 내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며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은 시간이 아니라, 주변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Change of Perspective)입니다.
6) 매 순간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를 한다.
당시의 대니얼도 그랬지만, 많은 학습자들이 남은 시간을 생각하며 자족하는 자기 암시를 하곤 합니다.
'에이, 11개월 남았는데', '아직도 6개월 남았는데'
이런 생각은 매 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7) 매일 5분 영어로 글(Personal Journal)을 쓴다.
아직 그때의 사진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죠.
인생에서 가장 비쌌던(부모님의 피를 빨았던), 그러면서도 가장 즐거웠던 시간들이 기억 속에서 스물 스물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문법이 틀리면 어떻고, 단어가 틀리면 또 어떤가요.
훗날 생각할 것입니다.
"ㅎㅎ 당시엔 내가 이런 콩글리쉬(broken English)를 열심히 쓰고 있었네~"
맺음말
지금 생각해 보면 90% 아니 80%도 만족하지 못했던 어학연수였지만, 귀국 후 취업을 보다 쉽게 해 주었으며, 그 이후 해외 출장의 기회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수년이 지나,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영어를 다시 붙잡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죠. 아울러 코리안잉글리쉬(KoreanEnglish.org)가 탄생을 했고요.
"27살 대니얼의 어학연수"
완전한 성공의 이야기도, 완전한 실패의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많은 영어 학습자들이 느끼게 되는 어려움과 좌절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지난 수 년간, 많은 학습자로부터 받아온 질문 중 하나는,
"어학연수 갈까요? 돈을 아끼고 한국에서 할까요?"
전 대답하죠.
떠나세요~!
떠나서 외화 많이 쓰고 오세요. 대신, 훗날 외화를 훨씬 더 벌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해 가세요.
6개월이든, 1년이든 그 기간은 당신 인생에 가장 값지고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하며 사는 우리지만, 그 순간 만큼은 성공으로 이끌도록 노력하세요. 그 성공이 앞으로의 인생에 수 많은 가능성을 제시할 것입니다.
Effort First, Then Methods.